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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발라먹기/국내산

이 땅의 모든 영재에게 보내는 격려 - 거인(2014)

 

거인(2014) - 이 땅의 모든 영재에게 보내는 격려

 

 

 

* 영화 정보 * [각주:1]

 

영문제목 Set Me Free
감독 김태용
출연 최우식, 김수현
제작사 메이킹에이프린트
배급사 필라멘트픽쳐스
제작국가 한국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08분
장르 드라마
홈페이지 http://www.facebook.com/butterflycj
개봉일 2014-11-13

 

 

 

“그래,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씩은 품고 살아...

구역질 나는 집을 나와 보호시설인 그룹홈에서 자란 열일곱 ‘영재’.
시설을 나가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무책임한 아버지 집으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초조하다
.
선량을 베푸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무릎을 꿇어주며 신부가 될 모범생처럼 살갑게 굴지만, 남몰래 후원물품을 훔쳐 팔기도 하고, 거짓말로 친구를 배신하며 하루하루 버틴다
.
눈칫밥 먹으며 살기 바쁜 어느 날, ‘영재’에게 아버지가 찾아온다
.
자신에게 동생마저 떠맡기려는 아버지로 인해 ‘영재’는 참을 수 없는 절망과 분노로 폭발하게 되는데…

“…무능한 아버지를 죽여주시고, 못난 어머니를 벌해주시고, 이런 나를 품어주세요”

절망을 먹고 거인처럼 자란 ‘영재’가 전하는
차마 버릴 수 없는 가족, 몹시 아팠던 청춘의 이야기 <거인>

 

 

 

 

 

* 리뷰 *

 

사실 영화 <거인>은 제가 평소 좋아하는 간결한 제목, 일상적 주제와 같은 요소들 때문에 개봉 전부터 조금 관심이 가긴 했지만 크게 기대를 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오 내 취향의 영환데? 정도 였지요. 하지만 영화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주인공 영재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고 영재와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두고 두고 생각날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 제 기준으로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가슴이 미어지는 영화입니다!

 

 

1. 거인 - 소년 영재

 

영화를 보면서 '거인'이라는 제목이 참 잘 지은 제목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인이 되어야만 하고 또 때로는 거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짊어진 짐이 너무나도 버거운 연약한 영재라는 인물에 대해 잘 묘사해 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주인공 영재는 참 여우 같은 소년입니다. 불쌍하고 나약한 여우 같습니다. 불우한 삶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영악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래서 자신이 더 상처받는 아직은 순수한 영혼입니다. 영재는 스스로 가정을 뛰쳐나와 카톨릭 산하의 그룹홈인 '이삭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룹홈 보호자를 엄마아빠라고 깍듯이 부르며 모든 비위를 맞춰줍니다. 또 고3이 되어 출가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부님께도 잘 보이려 애쓰기 시작합니다. 부족한 용돈은 기부 물품으로 들어온 메이커 운동화를 친구들에게 훔쳐 팔며 충당합니다.

 

영재에게 있어서 모든 행동의 기준은 '살아남기' 입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같은 방을 쓰던 친구를 한순간에 외면하기도 하고 아버지와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양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빌기도 합니다. 생존이라는 주제 앞에 소년은 꿈도, 자존심도, 미래도 버리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영재의 행동이 얄밉지가 않습니다. 참 못된 짓을 하는 아인데 오히려 그 영리함이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이유는 영재가 영악해지면 영악해질 수록 되려 영재만 상처를 입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보통 영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을 상처주지만 영화 속에서 영재는 아무리 영리한 행동을 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갯벌에서 발버둥 치는 마냥 점점 더 궁지에 몰릴 뿐입니다. 사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면서 성장해야만 하는 청소년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영화가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볼 때 아마 영화<거인>은 이 모든 어린 양(?)들에게 그만 자신을 상처입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감독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2. 청소년 -  참 '좋을 때'

 

 

흔히 어른들은 청소년기 학생들을 보면서 '참 좋을 때다.'와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큰 걱정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시절이기 때문이지요. 어른들의 이 말에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애정과 애틋함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거인>에서 영재의 동생 민재는 형과 어머니를 만나러 간 바닷가 마을에서 놀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좋을 때다.'라고 말합니다. 민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역도 아니고 긴 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말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아이들이 아이들을 보며 내뱉은 '좋을 때다.'라는 말은 같은 말이지만 어른들의 말보다 훨씬 많은 슬픔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을 때다."라는 한 마디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소외된 아이들의 서러움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십대를 어둠 속에서 보내야만 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사는 것이 괴롭고 갑갑할까요? 특히 다른 친구들의 행복을 봐야만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한창 여린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이들의 안타까운 성장 환경은 영재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지긋지긋한 삶이지만 아직은 자립할 만한 능력도, 환경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삭의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청소년이라는 그 애매한 위치는 마냥 보호를 받을 만큼 무능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립하기엔 아무 힘도 없는 아이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거인>을 보고나니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간힘을 쓰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주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가족 - 이 애증의 굴레를 아시나요?

 

영재에게 가족은 애증의 굴레입니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무책임한 어머니, 그리고 여리고 어린 동생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가족의 해체를 두려워 합니다. 또 동생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투박한 방법이지만 그를 잘 챙겨줍니다.

 

가족을 대하는 영재의 태도는 알 사람은 알만한 묘한 감정이었습니다. 참 싫지만 그래도 돌아갈 구석을 남겨 놓고 싶어하는... 아니 그럼에도 가족이 돌아갈 구석이길 믿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모순 적인 그 태도에 대한 묘사는 이 영화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영화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4. 캐릭터가 아닌 인간 영재를 만든 영화 <거인>

 

영재를 캐릭터가 아닌 인물로 만드는 힘은 바로 위와 같은 여러 복합적인 감정에 대한 묘사를 참 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다수의 영화에서 극중 캐릭터들은 몇가지 특정 감정들에 사로잡혀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당, 영웅, 배신자, 조력자 라는 일반화된 말로 쉽게 표현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그 이유는 아마도 복잡한 성격 배경으로는 일반 영화에서 보여주는 거대한 사건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인은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절대 시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영재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감정선, 내면의 갈등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여금 일반의 영화가 사건과 상황에 관객을 몰입시킨다면 이 영화는 인물에 온전히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오랜만에 참 좋은 영화를 보고 온 것 같습니다. 며칠동안이나 영재에 대한 짠한 마음이 남아 자꾸만 영화 이후 영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 <거인>은 영재로 자라왔던 많은 어른들, 영재가 될 많은 어린이들, 그리고 영재 처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너의 삶의 아픔을 알고 있다고 다독여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무능한 아버지를 죽여주시고, 못난 어머니를 벌해주시고, 이런 나를 품어주세요”

 

 

"어딜 가던 네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마"

 

"왜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건데?"

 

 

 

 


거인 (2014)

8.8
감독
김태용
출연
최우식, 김수현, 강신철, 신재하, 박주희
정보
드라마 | 한국 | 108 분 | 2014-11-13
글쓴이 평점  

 

 

한다인, han-dain@hanmail.net

 

 

 

 

  1. 씨네21, 거인,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42578 . [본문으로]